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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화면 한강 두물경 음성듣기

2011년 우리 강 이야기 오디오

 

 금강은 충청지역의 수운을 담당했던 중요한 수로였습니다. 하구가 넓고 깊어 강변에 나루와 포구가 발달했고, 하구 주변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 때는 하구에서 60km 가량 상류에 있는 부여 규암까지 물길이 형성되었습니다. 공주십경 3수에 나오는 ‘조룡대 아래 조수만 절로 돌아오누나.’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유용한 수송로였던 금강의 자연적 조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금강변은 내륙 수운이 발달해 있어 근대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충청남도 강경까지 대형선박이 자유롭게 운행했고 소형 선박은 하구에서 130여km 떨어진 충청남도 연기까지 운행했다고 합니다.

 

 19C 강경포구가 발달되기 이전에 금강은 이미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로 사용되었습니다. 백제시대 곰나루에서 출항한 선박은 한 달 쯤 후엔 오사카 항에 도착할 만큼 항로가 발달돼있었고 교역도 활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시대 이후부터 군산항이 개항하기 전까지의 금강수운은 조세미곡을 운반한 것 외에는 상업적으로 이용은 미미했습니다.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전국 최대의 곡창인 호남평야와 논산평야의 쌀을 수송하는 주요 수송로 역할을 하며 금강수운은 최대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당시 금강 수계를 왕래하던 배의 숫자는 매년 1만 5천 척 정도였으며 군산, 강경, 공주, 부강 간에는 정기기선이 운행되었습니다. 후에 경부철도 개통을 시작으로 금강의 수운 기능은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점점 철도교통, 도로교통이 발달되고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뱃길이 완전히 단절되면서 하항 기능을 하던 포구나 나루는 터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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